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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감동Story] 똥냄새 얼룩진 크리스마스

조희창 2005. 12. 7. 01:14

 


 

 


 


  “말도 마세요.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끔찍하다니깐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눈을 질끔 감아버리는 태우 씨. 그에겐 악몽과도 같은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있습니다. 끔찍하다는 그 일이 바로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에 일어난 것입니다.

  서른 넷의 태우 씨는 태백에서 광부 일을 하다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쪽 벌이가 없어지면서,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하는 심정으로 선택한 서울행이었지만, 타지의 삶은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지하도 노숙인들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며칠만 하던 것이 한 달, 두 달이 되고… 태우 씨는 점점 노숙 생활에 익숙해지며 의욕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계절도 시간도 잊은 채 지하철 한 켠에서 힘 없이 쭈그러져 있던 그에게 구세군의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성탄절이 돌아왔다는 걸 안 그는 불현듯 교회가 가고 싶어졌습니다. 중학교 때까진 참 열심히 다녔었는데, 삶이 팍팍해지면서 발길을 끊었더랬습니다. 구세군 종소리가 꼭 그 시절 교회 종소리 같았습니다.

  아련한 성탄절의 추억은 누워 있던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거울을 보았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으론 도저히 갈 수 없었겠지요. 태우 씨는 되는 대로 돈을 조금 모아서 목욕탕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자 마자, 여기가 어디냐고 들오느냐며 소리를 질러대는 등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였습니다. 이발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부터 내밀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몸에서 나는 냄새가 화근이었습니다.

  결국 거절만 당하다 지친 채로 남산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그는 어느 집 담 앞에서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담 안으로 빨래줄에 걸린 바지와 점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옷만 바꿔 입으면 그처럼 박대하진 않으리란 생각에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만 태우 씨.

  그런데 태우 씨가 바지와 점퍼를 훔치는 찰나 불행히도(?) 그만 주인의 눈에 띄고 만 것입니다.
  “도둑이야. 옷 도둑 잡아라!”
  비명 소리 같은 주인의 큰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도둑 잡아라”를 외쳐대며 태우 씨를 쫓아왔습니다. 거기다 경찰들까지 합세해 태우 씨는 꼼짝없이 잡힐 기세이었습니다. 다급해진 태우 씨는 훔친 옷을 움켜쥐고, 해방촌의 벽돌 공장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거기까지 쫓아온 경찰들이 문을 열라고 호통을 치고, 안에 있던 태우 씨는 수갑 찰 생각을 하니 끔찍했던 모양입니다.

  경찰이 억지로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태우 씨는 똥통에 몸이 가슴팍까지 잠긴 상태였습니다. 경찰들이 가까스로 태우 씨를 통에서 건져내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주인은 태우 씨의 몰골에 할 말을 잃은 채 서 있었습니다. 태우 씨가 불쌍해서였는지, 이미 똥물에 젖은 옷이 소용 없게 됨을 알아서였는지, 그녀는 그냥 옷을 가지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경찰 역시 똥물로 범벅된 그에게 수갑을 채울 순 없는 노릇이었지요. 

  경찰이 진정되고 사람들이 다 가고 나서야 태우 씨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냄새 나는 몸을 이끌고 남산 계곡물에 들어가 옷을 빨고, 몸을 씻고…. 결국 교회를 가려 했던 계획은 조각 나 버리고 그는 지독한 냄새와 함께 성탄절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 냄새가 쉽게 지워지지 않아 태우 씨는 일 년 가까이 똥독으로 고생을 해야 했지요.

  그 일 이후 태우 씨는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고 쪽방을 찾아왔습니다. 첫만남이 있던 날 그때의 일을 털어놓는 태우 씨를 보면서 나는 그가 스스로에게 느꼈을 연민을 짐작해 보았습니다. 냄새 탓에 아무도 그의 곁에 오지 않았을 테니 성탄절 이브날 밤부터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을지 말이죠.
  “그 일 겪고 정말 크게 깨달았어요. 이제부턴 남의 것 탐내지 않고 열심히 일할 겁니다. 똥 냄새처럼 독하게 맘 먹고 살아볼 거에요.”

  태우 씨는 쪽방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게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지금은 전세까지 얻어 화목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성품이 좋아 종종 쪽방에 와서 그 많은 그릇의 설거지를 도맡아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종종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변화되곤 합니다. 태우 씨가 맘을 바로 잡고 지금처럼 번듯하게 살게 된 것은 추하긴 하지만 그때의 사건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태우 씨를 변화시킨 것이 사건이 아니라 사랑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그때, 태우 씨가 이발소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아무 말 없이 머리카락을 깎아 주었더라면, 누군가 아무 말 없이 그가 몸을 씻도록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태우 씨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사람의 편견이란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 편견이 한 사람의 삶을 영원히 매장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쪽방 사람들은 그 편견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용불량자에 주민등록마저 말소된 사람들, 삶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편견 없이 바라봐 주는 사랑만이 멍들고 지친 그들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님도 노숙자이셨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 추하실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분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게 한 행동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이번 겨울 혹여 어딘가에 쓰러져 자는 노숙자들을 보신다면 사랑을 담은 기도라도 해주십시오. 혹 태우 씨의 경우처럼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온다면 작게나마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위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몸소 종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이들을 바라봐 준다면 쪽방의 크리스마스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김흥룡 목사는 남대문 주변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쪽방 동네 사람들을 위해
  ‘나사로의 집’을  운영하면서 헌신적인
   섬김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 월간 낮은울타리 2005년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