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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정성의 끝으로 달려가는 Mnet

조희창 2006. 12. 26. 14:48
Mnet의 높아진 위상
  Mnet(이하 "엠넷")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건 마치 '뮤직비디오만 줄창 틀어주는 채널' 같았다(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케이블이 잘 나오지도 않았을 시절, 나는 그렇게 뮤직비디오만 틀어댈 수 있는 채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신생 케이블 방송국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컨텐츠란 한계가 있었을테고 그래서 뮤직비디오나 이미 방송된 가요 프로그램의 일부분을 편집해서 재방, 삼방하는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엠넷(최초 설립 명칭 '뮤직 네트워크')의 출현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것은 KMTV가 독점하고 있던 음악 전문 케이블 시장에 경쟁 구도의 출현을 의미했고, 케이블 채널 간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었다. 1997년 제일제당 계열사로 편입된 엠넷의 성장세는 독보적이었다. CJ MEDIA는 제일제당이 '미원 만드는 회사'에서 '생활문화기업' CJ로 컨셉을 바꾸는 과정에서 주력 계열사로 떠올랐다. CJ MEDIA는 엠넷을 필두로 케이블 채널에서의 영역을 넓혀가면서 KMTV를 인수하는 한편 영화, 요리, 스포츠 등 새로운 채널을 개국했으며 최근에는 이효리, 옥주현과 계약하며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엠넷미디어)에도 뛰어들었다. 이제 CJ MEDIA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미디어 회사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엠넷이 있다.
  이제는 누구도 엠넷을 뮤직비디오나 틀어주는 케이블 채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엠넷은 지금 뮤직비디오 홍보에서부터 가요 프로그램, 연예 정보 프로그램, 리얼리티 쇼 등 연예인을 가지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컨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엠넷은 국내에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의 연말 시상식(MKMF)을 개최하고 그것을 해외 수십개국에 송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방송국이며, 지난 3월에는 엠넷 재팬을 출범시키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향력을 가진 케이블 채널이 되었다. 케이블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공중파만큼의 시청자를 확보할 수는 없지만 엠넷은 그 어느 방송국보다 충성도 높은 고정 시청자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연예인(또는 연예계)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엠넷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엠넷은 매일 생방송으로 편성된 <와이드 연예뉴스>로 '오빠'들의 소식을 가장 먼저, 자세히 전해주고, <미소년 다이어리> <STAR WATCH 24> 등으로 '오빠'들의 일상을 따라다닌다. 거기에 재방은 기본이고 오방, 육방까지 하니 24시간 '오빠'들의 모습이 끊일 날이 없다. 이제나 저제나 '오빠'들의 소식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팬들에게 엠넷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다.

어떻게 시청자를 붙잡을 것인가
  누구나 '디카' '폰카' '폰동영상' 따위를 찍을 수 있게 되고, '오빠'들에 대해 팬들이 방송을 거치지 않고 나눌수 있는 것들(직캠, 직찍 등)이 많아지게 된 것은 어쩌면 케이블 채널에게는 쥐약같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잡아끌었던 케이블 채널은 팬들이 이제 방송을 보지 않고도 스타들의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공식 행사장이나 미용실 따위를 졸졸 쫓아다니며 인터뷰나 하는 '심심한 방송'으로는 더 이상 팬들에게 '새로운'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게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변덕·집착 대마왕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을까.
  이런 고민 과정에서 탄생한 포맷이 리얼리티 쇼였다. 이미 해외에서는 인기 장르로 자리잡은 리얼리티 쇼를 도입하면서 케이블 채널들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가장 주목받은 프로그램은 KMTV의 <M! PICK>이었다. KMTV의 <M! PICK>은 실력있는 신인 뮤지션 발굴이라는 거창한 목표 아래 이미 기획사에서 다 준비해 놓은 신인들을 띄우기 위해 '리얼'한 '쇼'를 만들어냈다. <M! PICK> 출연은 스타 탄생의 예고편이었다. <M! PICK>은 스타(예정자)들의 연습실에서부터 숙소, 녹음실, 공식 행사장을 따라다니며 연습에서 데뷔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었다. 가히 공식 파파라치의 등장이라 할 만했다. 이렇게 팬들은 아직 정식 데뷔하지도 않은 '솜털 뽀송뽀송한 오빠'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집에 편안히 앉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들이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곳까지 따라 들어가는 카메라에 큰절이라도 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특히 가장 최근 방영한 <M! PICK SS501>편은 SS501의 대성공과 함께 팬들로부터 '은혜로운 방송'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이 얼마나 완벽한 수식이란 말인가).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리얼리티 쇼는 공영성을 전제하는 공중파 방송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포맷이었기 때문에 케이블 채널이 독보적 우위의 제작권을 가질 수 있었고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입장에서도 이미지 메이킹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므로 곧 케이블 채널의 주력 포맷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도전! 슈퍼모델> <아메리칸 아이돌> 등의 해외 리얼리티 쇼들이 일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출연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국내 케이블 채널들의 리얼리티 쇼들은 조금 다른 형태로 분화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최근 인기를 끌었던 <미소년 다이어리> 같은 프로그램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기보다 단지 인기 그룹(슈퍼주니어)의 일상, 그들이 노는 모습들을 찍어 방송함으로써 기존에 '리얼리티 쇼'가 가지고 있던 함의를 깨 버렸다. 인기리에 방송중인 <STAR WATCH 24>는 그러한 프로그램 컨셉이 극대화된 경우로, 이 방송의 목표는 오직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좀 더 가까이서, 내밀하게 잡아내는 것 뿐이다. 즉 계약에 의한 파파라치 프로그램인 셈이다. 실제로 최근 엠넷(+ KM)이 제작했던 유사 리얼리티 쇼 중에서 본래 '리얼리티 쇼'가 추구하는 목표에 근접한 것은 <I AM A MODEL> 정도에 불과하다. 그 외에 논란이 된 <SS501의 스토커> <슈퍼주니어의 미스터리 추적 6> 등은 리얼리티 쇼라고 하기엔 민망하고('쇼'도 아니다) 그저 '리얼함'을 내세운 재연 프로그램 내지는 파파라치 프로그램이 기형적으로 변화한 양식으로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들은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낳았고, 그 인기에 힘입어 현재 <미해결 사건파일 - SS501의 SOS>(이하 "<SS501의 SOS>")가 방송되고 있다.

선정성만이 무기다
  가수들의 앨범 발표과 홍보, 활동이 집중되는 시기에 케이블 채널은 파파라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 프로그램들은 새 앨범을 발표하는 '오빠'들의 새로운 헤어나 의상, 노래를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팬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는 의미가 없다. 방송은, 비공식적 루트로는 뚫을 수 없는 것들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미용실에서 준비하는 모습이나 연습실에서 새 춤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팬들은 오로지 '방송'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그것들에 열광한다. 방송은 편집되어 인터넷에 떠다니고 팬들은 '너무 귀엽고 멋있는 오빠'들에 쓰러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파파라치 프로그램은 수명이 짧다. 가수들이 새 앨범을 내고 홍보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찍는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데는 한계가 있다. 활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매체 노출이 잦아질수록 그들의 모습은 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빠'들이 애교 부리는 모습이나 토크쇼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빵빵 터뜨려 주면 케이블의 파파라치 프로그램은 뻘쭘해진다. 애교나 눈물은 단순히 연예인을 쫒아다녀서는 얻을 수 없다. 이 쯤해서 이런 파파라치 프로그램에게도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변화의 파도 속에서 엠넷이 기적처럼 만들어 낸 프로그램이 바로 <SS501의 스토커>였다. 이 프로그램은 기획부터 기이했다. SS501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던 엠넷은 셀프카메라를 찍던 중 SS501의 스토커와 관련된 일련의 공포스러운 사건을 접하게 된다. 이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촬영은 중단되었고 영상이 찍힌 테이프는 방송되지 못하고 보관처리 된다. 그러던 중 엠넷은 DSP(SS501 소속사)와의 협의 끝에 촬영된 테이프를 공개하고 SS501의 스토커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SS501의 스토커>의 탄생이다.
  <SS501의 스토커>는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예고편만으로 시청자들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그리고 숙소에 도둑이 든 사건, 코디가 스토커에게 공격당한 사건 등 이미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던 사건을 방송 예고하면서 팬들이 갖는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애초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위해 촬영된 테이프'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정의하기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시작이 워낙 '리얼'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공개될 사건들이 과연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실제로 촬영된 것이냐 아니면 이 프로그램을 위해 연출된 것이냐 하는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날짜가 가까워 오면서 진위를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SS501의 스토커> 측은 관련 사실에 대한 입장 표명을 미뤘고, 팬들 사이에서는 '진짜 찍힌 것이다' '연출된 것이다'하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제작진 측에서 방송 직전 '일부 실제 촬영된 영상이 있지만 대부분은 재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공개할 때까지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본방이 나간 후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리얼'과 '재구성'이 결합된 이 프로그램은, 편집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실제 촬영분이고 어디서부터가 재구성된 부분인지를 밝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모든 사건이 실제인 양(기사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게다가 코디네이터가 스토커의 공격을 받아 피를 흘리는 장면을 비롯하여 주 시청자층인 10대 학생들이 보기에 적절하지 않은 영상을 다수 내보내면서 선정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프로그램의 선정성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것은 시청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효과 좋은 기폭제일 뿐이었다.
  사실 엠넷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선정성 논란이 인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논란이 된 <SS501의 스토커> 외에도 최근 방영된 <슈퍼주니어의 미스터리 추적 6> <SS501의 SOS>가 <SS501의 스토커>와 유사한 컨셉을 가지고 있으며, <SS501의 스토커> 방영 당시와 같은 논란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특히 <SS501의 SOS>는 <SS501의 스토커>에서 선보인 기만적인 형식과 더불어 '솔루션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SS501의 SOS>는 성 학대, 가정폭력, 이성 문제 등 청소년들이 직면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SS501이 나서서 도와주면서 청소년 문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는 것에 그 기획의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문제에 대한 고민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고민 대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집에 CCTV를 설치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CCTV 안에서 연기자들은 또 연기를 한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전개를 보면 연출된 것이 분명한데 어디에도 재구성이라는 단서는 없다. 주인공인 SS501도 맡은 '연기'를 너무나 열심히 한다. 게다가 피해자 인터뷰 장면에서는 모자이크 처리에 음성 변조까지 하고 PD와 마주앉아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하는 등 마치 이것이 <SS501의 그것이 알고 싶다>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예전부터 솔루션 프로그램이나 사회 고발 프로그램은 연예인을 이용한 예능의 손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건들을 파헤치면서 일약 인기 프로그램이 된 <윤정수의 SOS24>는 본격적으로 연예인(게다가 개그맨)을 진행자로 내세웠지만 100%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SS501의 SOS>와 완전히 다르다. <SS501의 SOS>는 '솔루션'을 명분으로 지극히 민감하고 비과학적인 내용,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내용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방영함으로써 시청자들의 판단을 흐리는, 일종의 사기극이다. <SS501의 SOS>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실화가 바탕인지 완전 픽션인지도 알 수 없는 자극적인 영상과 그 자극적인 사건을 해결하는 연기를 하는 SS501의 모습, 그들의 숙소 생활 그리고 허영생이 TV를 보며 말아 덮고 있는 땡땡이 이불 따위인 것이다.

시청률 앞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다
  <SS501의 SOS>는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극단적인 결과물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어디에도 청소년 문제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정 폭력과 성 학대 등 심각한 청소년 문제를 경험한 청소년을 소재로 하지만, 그것은 그저 '소재'로 이용될 뿐 현실의 가정 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나 피해 청소년에 대한 고민 및 지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작진에게 사회 문제란 프로그램의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을 뿐, 실제 그러한 고통을 겪는 청소년들이 <SS501의 SOS>를 보면서 느끼게 될 심리적 불안감이나 2차적 폭력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듯하다. <SS501의 SOS>는 모든 것을 연예인의 틀로 '예능화' 한다. <SS501의 스토커> 역시 자극적인 소재였으나 그것은 소재 역시 연예계 안에 있는 것이었으므로 그 기만성을 비판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연예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워먹든 삶아먹든 그건 그 쪽 선택이니까. 하지만 <SS501의 SOS>가 도전하는 영역은 연예계와 저 먼 곳에 있다. 그것은 정말로 심각한 사회문제다. 고민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놀이'나 '재미'가 될 수 없다. 만약 PD의 지인이 그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이승연이 위안부 누드를 찍었을 때와 경우만 달랐다 뿐이지 내포하는 심각성은 유사하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 자체가 폭력이다.
  최근 일약 문제 프로그램으로 떠오른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도 심각하다. 나는 케이블이 시도할 수 있는 것과 시도해서는 안 될 것이 분명히 구분된다고 본다. 케이블은 '공영 컴플렉스' '근엄 컴플렉스' 때문에 공중파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tvN의 자체 제작 드라마 <하이에나>에 TV 드라마로서는 파격적인 노출이 등장한다든지 앞서 말한 것처럼 스타를 24시간 쫓는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것은 케이블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자는 TV가 갖는 표현의 영역을 넓히고 성인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한다. 후자는, 해당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 연예 산업의 규모, 그리고 그러한 프로그램을 원하는('오빠'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제작할 만하다. 선정성으로 물의를 빚은 tvN의 <리얼스토리 猫>나 <tvNgels>는 '여'성을 상품화 한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미 '성의 상품화'라는 아이템 자체가 방송이 외면하기 어려운 트렌드임을 생각할 때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프로그램들이 특정 성, 특정 계층의 시청권만을(특히 '남성') 보장하려 드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양한 성과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상품화된 성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말릴 일만은 아니다.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이 갖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 여러 포인트에서 발견된다. 공중파의 사랑 놀음을 넘어 아예 사랑을 물질화, 계량화 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고 출연자들의 도가 지나친 놀이(물에 빠뜨리기, 왁싱 등)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언제 문제를 터뜨릴지 모른다는 불안을 항상 안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퀸카에게 탈락당한 후 얼굴에 낙서를 하는 남자 도전자를 보고 '저런 놈이!' 하고 분노하지만 그건 케이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KBS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 같은 프로그램이 준비된 일등급 신랑 신부 후보를 출연시켜서 결혼의 신성함(정확히는 노블레스함)을 강조하려 든다면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은 쉽게 흔들리거나 거래될 수 있는, 어쩌면 이 시대의 솔직한 연애를 가식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케이블에게 공중파와 같은 가이드 라인을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 역시 또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작 중대한 문제는 출연자로부터 터졌다.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에 5대 킹카로 출연한 김현철이 발원지였다. 그는 도전자로 나온 여성 출연자의 스타일을 지적하면서 "신발이 강북 같다" "저-기 수락산 밑에서 살 것 같다"는 등 강북 폄하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의 발언에 MC도 출연자도 심지어 제작진도 기겁했으나 그 발언들은 편집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방송되었다. 킹카는 거칠 것 없는 모습이었고 방송 이후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온 비난 글에도 맞비난으로 응수하는 등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그는 한 명의 퀸카에게 5명의 킹카가 도전하는 'Super Fight' 에피소드에도 출연하여 퀸카에게 '프라다 공장'에서 직접 사 온 신발을 선물하는 등 방송 이후에도 전혀 변함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자랑했다. 조정린도 '된장남 김현철'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어쨌든 그는 방송에 또 나왔다. 문제 발언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이미 밝혔듯, 나는 이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들이 케이블이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하지만 자유랍시고, 라이프 스타일이랍시고 강남 - 강북 운운하는 발언을 편집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문제였다. 젊은 세대들에게 강남 - 강북은 때로 컴플렉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강남스러운 것'은 고급스러운 것, 세련된 것, 앞서가는 것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취급되는 반면 '강북스러운 것'은 촌스럽거나 뒤쳐진 것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취급된다. 강남 - 강북은 이제 단순히 지역을 구획하는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강남 - 강북 컴플렉스는 이데올로기화 되고 있다. 이건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으며 떠돌아 다닐 성격이 아니다. 케이블이라는 이유로, 게다가 출연자가 일반인이라는 이유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만약 공중파에서 유명 연예인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제작진은 촬영된 테이프를 편집하면서 그냥 재수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국에 수십만명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입장에서 시청자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나 분노는 생각해 보았을까. 방송을 보는 철없는 아이들이 갖게 될지도 모를 강북에 대한 혐오나 강남에 대한 비정상적 동경은 생각해 보았을까. 방송은 힘이 세다.

엠넷은 엠넷일 뿐
  나는 엠넷을 즐겨본다. 엠넷의 프로그램들을 욕하지만 사실은 그 프로그램들을 거의 다 보기 때문에 욕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동방신기나 SS501은 나보다 어리지만, 그 어린 애들이 TV에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간 그들이 신기하고 기특해서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엠넷은 그들을 취재하고 따라가주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는다. 엠넷을 기다리는 건 그들의 팬 뿐만은 아니다. 그들도 기다리고 나도 기다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눈요깃거리를 기대한다.
  방송은 항상 변화의 요구에 직면한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서 제공해야 한다. 무한한 창의성이 요구된다. <재용이의 순결한 19>가 주목받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인터넷 뒷담화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지금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도를 감행했다. 그리고 MC 재용이는 매회 피용나 공주, 고릴라 등으로 분장하면서 끝없는 변신(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감당해냈다.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민망하고 선정적이지만 적어도 주제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이 어떤 영역에서 얼만큼 발언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 가끔씩 도를 넘는 MC의 코멘트도 오직 연예인을 향한 것에만 국한된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뒤에서 히히덕거리던 이야기들을 방송을 통해 확인받고, 그 이야기들이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연예계에서도 통하는 이야기임을 발견하고는 배시시 웃곤 하니까. 그들은 영역 안에서 웃고 떠들고 비난한다.
하지만 엠넷이 자꾸만 연예의 영역을 벗어나려 하거나 거짓말을 하려 들면 문제가 발생한다. 폭력 피해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은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들이 할 일이다. 정말로 심각하게, 관계 당국의 긴밀한 협조와 사후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 청소년들은 육체적, 심리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은 예능의 영역이 닿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예능은 양지만을 향해야 한다. 음지에 있는 것들을 양지로 꺼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엠넷은 그런 힘든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할 수도 없다. 어줍잖은 문제 의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건 피해 청소년들을 겨우 가십거리로 만드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SS501의 SOS> 같은 프로그램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불붙을 거라 생각했는가? 그랬다면 그건 판단 오류다. 엠넷은 엠넷일 뿐이다. 그냥 조용히 재미있으면 된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고, 스타를 파파라치해주고, '놀아본' 경험을 살려 시청자들을 즐겁해 해주면 된다. 문제적인 것들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누가 감히 강남 - 강북을 운운하는가?
  요즈음 엠넷이 내건 슬로건은 '놀아본 엠넷과 상의하세요'다. 엠넷은 그냥 엠넷이어야 한다. 놀아본 엠넷이어야 한다. 10년 넘게 놀던 엠넷이 이제 와 공부한다고 거짓말하면 되겠나. 그래서는 안된다. 모든 것에는 영역이 있는 법이다. 엠넷은 엠넷일 때 가장 재미있다.
출처 : initialWdotnetwork : TV
글쓴이 : W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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