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살피기

폭력, 죽음 휘젓는 뮤직비디오

조희창 2004. 11. 21. 00:32

한겨레신문 | 미디어세상살피기

우리에게 뮤직비디오가 크게 다가온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음반 판매를 늘이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뮤직비디오는 1982년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인 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독립된 영역의 매체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1995년 뮤직비디오 중심의 음악 케이블 채널이 출범되면서 활성화되었다. 그러던 중 98년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투헤븐>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뮤직비디오 제작에 불을 지폈다.


이렇게 점점 특별한 장르(매체)적 위치와 영향력을 확대해온 뮤직비디오는 형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 영향력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시초가 그랬던 것처럼, 본 음악의 음악성을 잘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음반의 판촉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뮤직비디오에 들어가는 제작비가 음반 녹음 제작비를 추월하거나, 호화 캐스팅과 눈요기 거리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붙잡으려는 시도가 지속되어왔다. 이러한 가운데 한해 제작되는 편수 또한 2-3년 전까지 해마다 늘어 연 제작 편수가 500~600백편 수준까지 커지면서 감각적 영상에 뛰어난 광고(CF), 영화 감독들이 뮤직비디오 제작에 대거 투입되었다. 물론 최근 1-2년간 음반불황으로 대형 뮤직비디오 제작이 다소 주춤하고 있기는 하다. 뮤직비디오의 광고적인 역할과 더불어 실제 뮤직비디오 안에 특정상품을 홍보(PPL - Product Placement: 특정 상품을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등의 소도구로 활용, 광고효과를 노리는 간접광고기법) 하거나(가수 이수영의 6집 뮤직비디오) 초기제작부터 제품홍보의 성격을 지니고 제작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의 한국영화 제작시 뮤직비디오를 함께 제작 배포하는 것 또한 같은 흐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갈수록 뮤직비디오가 상업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용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내에서 한참 제기되었던 한국 영화 속의 `조폭'(조직폭력)문제는 뮤직비디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총기 사용이나 살인장면, 주인공의 연인이 병으로 죽는 등 폭력이나 죽음이라는 소재는 영화보다 더욱 빈번하게 등장한다. 뮤직비디오 중에서 죽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이다. 올해 상반기에 나온 얀의 뮤직비디오 ‘두고 봐’에서는 폭력배가 여자 주인공 앞에서 남자 주인공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장면이 등장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선정성 문제 또한 해를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현재도 그러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수영의 뮤직비디오 ‘꿈에’는 짙게 화장한 여자 어린이들을 등장시킨다. 이 뮤직비디오는 소아 성도착증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많은 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지상파 방송 3사에서는 다행히 방송이 금지됐으나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영되었고 인터넷상에서는 청소년에게 무분별하게 노출 되었다.


이러한 뮤직비디오들에 대한 텔레비전의 태도, 방영기준은 어떠한가? 좋은 음악성, 내용, 영상미보다는 제작비나 출연 배우의 유명도에 따라 그 방영 빈도가 좌우되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더 부정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특별히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방영되는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 M.Net의 주요시청자가 청소년임에도 거의 무분별하게 대부분의 뮤직비디오가 그대로 방영되고 있다. 가정에서 특별한 시청지도가 요하는 부분이다.


뮤직비디오 가운데 좋은 가사와 그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영상과 내용으로 이루어진 수작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뮤직비디오가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작품들이 늘어나고 이것이 자녀들에게 적절히 잘 보여 진다면 그 영향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디지털 방송이 시작되고, 디브이디(DVD), 동영상 휴대폰이 더욱 보급되면 뮤직비디오는 더 확산되고 많은 이들에게 보여질 것이다. 이에 뮤직비디오를 방영하는 방송국과 각 매체 담당자들은 올바른 방영기준과 제작사의 상업적인 이용에 대한 적절한 규제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화소비자들도 좋은 작품이 늘어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이고 세밀한 영상 읽기와 문제제기를 해야 하겠다.


글 | 조희창 간사(낮은울타리 미디어교육원 간사)

이글은 2001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