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코드 깨기 - 조시 맥도웰 긴급 대담 전문
*조시 맥도웰 소개
그는 기독교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진 회의론자에서 변화된 사람으로 탈봇 신학교를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했으며 CCC 순회강사로 57개국 580여 대학과 500만 이상의 지성인들과 교수들에게 변증적 멧시지를 전하고 있다. 다빈치코드의 허구성을 변증적으로 반박하는 책을 발간하였고 한국에서는 순출판사를 통해 곧 출간된다.
현재 조시 맥도웰은 국제CCC내의 Josh McDowell Ministry를 이끌고 있고 기독교의 역사적 근거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변증한 여러 권의 책이 천만부이상 나갈만큼 베스트 셀러를 썼다. 한국 다빈치코드 매거진 프로젝트 팀 에서는 조시의 최근 다빈치코드와 관련한 긴급대담을 긴급하게 받아 아래에 게재한다
40년전 조시 맥도웰은 기독교가 거짓임을 굳게 믿고 교회와 기독교의 거짓됨을 폭로하고자 개인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 수백 시간 이어진 연구의 과정 가운데 의심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가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기독교의 역사적 근거에 대해 발간한 책은 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 그의 개인 연구 과정과 ‘다빈치 코드’로 인해 제기된 의문들 간에 큰 유사점이 발견되기에 인터뷰를 하기에 이르렀다.
‘다빈치 코드’의 내용을 보면 신약이 언제 쓰였는지 불분명합니다.
맥도웰: 신약을 쓴 시기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학자들과 자유적인 학자들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의 차이란 것도 세기가 달라질 만큼 큰 차이가 아니라 10년 정도의 차이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마가복음이 주후 50-60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하고 자유신학자들은 70년 정도로 봅니다. 예수님이 주후 30년쯤에 돌아가셨으니 이는 놀라운 것이죠. 그 기록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기록인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바울의 서신서는 50-66년 사이에 쓰였고 복음서는 50-70년에, 요한복음은 80-90년 사이에 쓰였습니다. 약 주후 125년 경의 요한복음 사본의 일부가 남아 있으니 또한 놀랍습니다.
신약 성서의 원본 중에 남아있는 것이 있나요?
만약 있었다면 그 가치가 엄청났겠죠. 근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원본의 초기 사본들입니다.
그렇다면 원본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신약의 사본의 정확성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면을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는 현존하는 사본의 숫자이고 두 번째는 원본이 쓰인 시기와 현재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본간의 시간 격차입니다. 더 많은 사본이 발견되고 더 오래된 사본을 보유할수록 정확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플리니우스 세쿤두스의 ‘박물지(Natural History)’의 경우 원본과 가장 오래된 사본 간에 750년의 시간 격차가 있고 7개의 사본이 존재합니다. 역사상 사본의 권위가 가장 높은 2번째 책은 호머의 ‘일리아드’로 원본과 사본 간에 400년의 시간차이가 있고 643개의 사본이 존재합니다.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신약의 경우 현존하는 사본이 24,970개로 모든 고대 문학의 사본 개수를 훨씬 윗돕니다. 더구나 신약의 일부만 보존된 한 사본은 원본과 50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신약의 각 권의 전체가 보존된 기록은 원본과 100년 정도 시간 차가 있고 신약 전체의 경우도 225-250년 정도의 차이 밖에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든 초기 사본들을 살펴볼 수 있으니 원본에 무엇이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이 니케아 공의회(주후 325년)에서 결정됐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맥도웰: 사실 그보다 더 이후인 주후393년 콘스탄틴 대제의 죽음 이후에 열린 히포 공의회에서 교회가 신약의 27권에 대해 확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도 둘 다 정확하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왜 정확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건가요?
맥도웰: 왜냐하면 교회가 이 27권의 책들을 확정적인 신약으로 인정한 것은 니케아 공회보다 거의 175년 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선교와 거짓 가르침과 이단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약에 포함된 각 권의 명단을 명시할 필요를 느꼈던 거지요.
신약이 확정된 것은 언제인가요?
맥도웰: 1세기 당시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신약의 많은 권들이 이미 성경 말씀으로 여겨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후 180년의 이라니우스의 글에는 4개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와 요한계시록이 정경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니케아 공회보다 150년 전의 글로 신약의 대부분을 포함한 것이지요.
늦어도 주후 150년 정도에는 교회가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거의 같은 신약을 인정했다는 증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를 읽어보셨을텐데요, 콘스탄틴 대제가 정경을 결정하는데 어떤 역할을 했나요?
맥도웰: 네, 읽어봤습니다. 우선 밝혀둘 것은 그 책은 소설로서 역사적인 혹은 종교적인 서적으로 포함시킬 수는 없는 것이므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콘스탄틴 대제는 신약이 결정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새롭게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제국에 불화를 일으키는 계속적인 공방전에 대해 영적 연합을 도모하고 분명한 교회의 입장을 밝힐 수 있도록 공의회를 소집한 것입니다.
그 공방전이라는 것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것이었습니까?
맥도웰: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은 있었지만 핵심은 예수님의 지위가 성부 하나님보다 못한 것인가, 그도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분이신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단순히 인간이거나 선지자라고 믿거나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그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 상당히 근소한 차이의 투표 결과라고 하던데요?
맥도웰: 서미시간 대학의 역사학자 폴 마이어 박사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투표결과는 300 대 2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근소한 차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그리고 내용 또한 단순히 예수님이 성부하나님과 함께 영생하시는 분이신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빈치 코드’에 의하면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80여개의 다른 복음서를 신약에서 배제시켰다고 합니다.
맥도웰: 사실 60여개의 다른 문서가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복음서는 아니고 영지주의라는 이단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이 문서들은 대부분 2세기에 쓰여진 것들로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 저자라고 사칭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런 ‘또다른 복음서’의 모습을 띈 초기 문서들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고 그의 인성을 부인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1세기나 2세기의 문학을 찾아 읽어보신다면 기독교 공동체는 일관되게 이들을 이단으로 규명하고 그들의 신학과 문서를 비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니케아 공의회의 20가지 의결 중에는 신약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 한 개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맥도웰씨가 쓰신 저서들이 있기까지 사실은 기독교를 비방하고자 했다는 후문이 있는데 이에 대해 코멘트 하실 말씀이 있나요?
맥도웰: 코멘트 하라는 건 사실인지 묻는 것이죠? 네, 저는 기독교의 핵심은 사실이 아닌 신화가 바탕이라고 의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시간의 연구가 계속되면서 저는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이 기록된 그대로 실제 일어난 사건들이며 예수님이 진실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나요?
맥도웰: 성경의 예언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구약은 주전 1400-400 사이에 쓰여졌습니다. 아시다시피 구약의 상당 부분이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야인가 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쓰여진 구약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300개 가까이의 묘사적인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주전 750년경 쓰여진 미가서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
주전 600년경에 쓰인 이사야서에는 예언하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뜻이다) (사 7:14)
이사야서에는 또한 메시야의 죽음과 관련해서 예언하기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베들레헴에서 처녀로부터 태어나 우리의 허물로 인해 찔림을 당한 “메시야”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제 말이 이해가 되시나요? 연구를 하면 할 수록 이 사실이 더욱 깊이 제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맥도웰씨께서는 ‘다빈치 코드’로 인해 제기된 논점들을 다루는 새로운 책을 쓰셨는데요. 이 책도 다른 저서들처럼 깊은 연구 중심의 책인가요?
맥도웰: 이 주제에 관해 이미 좋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마도 니케아 공의회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법한 일반인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의 많은 연구와 참고자료들을 뒤져보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구들 간의 대화 형식으로 내용을 풀어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때 연대와 기록들로 가득한 백과사전을 끼고 사고해 나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일반 독자들과 영화 관람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것이 제 바램이지요.
‘다빈치 코드’ 줄거리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에 대한 추정이 그 토대가 됩니다. 이것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맥도웰: 사실 이 내용은 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보혈과 성배’라는 책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제 생각에 역사학자들은 이미 이 책의 발상에는 아무런 역사적 토대도 없음을 수없이 명시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초기 기독교 기록에도 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기록이란 복음서들, 초기 기독교인들의 기록, 저자 Brown이 암시하는 다른 복음서들인 나사렛인들의 복음서, 애굽인들의 복음서, 에비오나잇인들의 복음서, 마리아의 복음서, 베드로의 복음서에조차 말입니다. 이 모든 기록에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주장은 아무런 역사적인 배경도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빌립의 복음서가 마리아를 예수님의 아내라는 의미로 ‘동반자’로 지칭하지 않습니까?
맥도웰: ‘다빈치 코드’에서 티빙이라는 인물이 아람어로 ‘동반자’란 ‘배우자’를 뜻하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빌립복음서는 사실 아람어가 아닌 콥틱어로 쓰여진 것이므로 그 단어가 아람어로 어떤 뜻인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빌립복음서에 사용된 그 단어는 아람어도 콥틱어도 아닌 헬라어의 ‘코이노노스’라는 단어에서 차용된 말로 이는 분명히 배우자가 아닌 친구나 동료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발상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성서적 근거에 대한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배제된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 남자들이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남아있으면 정죄 받지 않았나요?
맥도웰: 아닙니다. 사해 사본들을 남겼던 엣세네파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이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남성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다른 유대 미혼 남자들의 기록들을 봐도 정죄 받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정죄에 대한 암시를 이후의 유대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부인은 없었던 건가요?
맥도웰: 네, 없었습니다. 설마 산타크로스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다빈치 코드’가 제시한 논점들로 의문을 갖는 이들을 위해 다른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맥도웰: 진실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정확한 역사적인 자료는 믿음을 흔들만한 어떤 사실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 자료들이 믿음으로 이끌어 주었지요. 하지만 답을 찾으려 할 때는 허구나 소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부터 찾아야겠지요.